읽기자료 1.롤스의 정의론 -협상 또는 계약과 관련된 이야기 자료

【읽기자료 1】롤스의 정의론 -협상 또는 계약과 관련된 이야기 자료



롤스 : 나는 계약 이론은 당사자들이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 있어서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모르며 어떤 제도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그들은 천부적 재능이나 능력의 분배에 있어서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까닭에 그들이 어느 정도의 지능이 있고 얼마나 체력이 강한지 그리고 남녀의 성별도 모르는 것으로 간주된다. 끝으로 그들은 자신의 특정한 이해관계나 선호 혹은 자기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체계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 자신의 가치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측면에 있어서 당사자들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로 가려져 있어 특정 개인이 자신의 행운이나 사적인 관심으로부터 이득을 보거나 손해를 볼 수 없게끔 되어 있다.



즉 당사자들은 자신에 관해서도 무지한 상태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합의를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합의 당사자들의 이해 관계가 저마다 다르고, 또한 힘의 균형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자기 힘을 최대로 발휘하여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모두 원하는 합의를 이루기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과연 정의라는 게 있기나 한지 의심을 하고 원칙은 사라지고 만다. 다시 ‘법은 강자의 이익이다’는 명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롤스가 한 것처럼 무지의 베일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상황을 가정해야만 정의의 원칙이 나올 수 있다. 롤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롤스: 물론 이러한 입장은 자연 상태라는 전통적인 개념을 분석적으로 유추해서 얻어진 것이며 어떤 역사적 사건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계약 이론의 기본 개념을 구비하고 있는 가정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즉 역사적 사건은 아니지만 자연 상태라는 전통적 개념을 분석적으로 유추해서 만들어낸 가정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는 기하학에서 점의 정의와 비슷하다. 즉 점도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 하지만 기하학의 점이 현실의 점이 아니며, 그 점의 개념을 가정적 상황에 놓은 것이다. 우리는 기하학을 배우면서는 공리의 황당함에 놀라지 않는데 롤스의 가정적 상황에는 적잖이 놀란다. 기하학은 학문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해서 그러려니 하지만, 사회 정의론은 누구나 일가견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우리가 다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회 정의론은 자신의 환경과 상황과 이해를 벗어나기 힘든 매우 좁은 범위에 머물러 있으며, 좀처럼 사회 공동체 전체를 위한 합의에 이르기 힘든 구조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는 길은 무지의 베일이라는 실재하지 않는 가정적 상황을 만들어내 정의의 원칙을 이끌어내는 것이 유일한 방도일 것이다.


이런 가정적 상황에서 도출된 원칙을 어떻게 구체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왜 부정의한 법을 준수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는 매우 오래된 문제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했다고 했는데, 사실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도 한다. 왜 악법을 준수해야 하는가? 롤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롤스: 헌법이 정의로우며 그로부터 이득을 받아 왔고 앞으로도 받을 계획이라면 가정한다면 우리는 다수자가 제정한 것이 부정의하다 할지라도 그에 따라야 할 자연적 의무와 책무를 갖는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부정의한 법에도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데 물론 언제나 그러한 것은 아니고 부정의가 일정한 정도를 지나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만 그러하다.



여기서 헌법을 원초적 입장에서 제정된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실제 입헌 과정에서는 언제나 불완전한 절차적 정의가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부정의한 법이 생길 수 있다.



롤스: 다시 말하자면 비록 우리가 정의로운 입법에 대한 어떤 기준을 갖는다고 (가정한다)할지라도 제정된 법이 정의로운 것임을 보장할 만한 현실적인 정치적 절차가 없다는 것이다.



즉 케이크를 똑같이 나누고 나누는 사람이 맨 나중 덩어리를 갖는 것과 같은 완전한 절차적 정의를 갖지 못한다. 여러 사람이 입법을 하다 보면 다소 고의적인 오류를 범한다. 그리고 이러한 법이 앞서 말한 정의의 원칙에 어긋나면서 부정의가 일정한 정도를 넘어서면 우리는 불복종할 수 있다.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다. 헌법이 정의로우며, 우리가 헌법으로부터 이득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받을 것이라면, 다수결로 제정한 법이 부정의하더라도 일정한 정도를 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켜야 한다. 우리는 헌법이 정의로운지를 앞의 정의의 원칙에 비춰 판단할 수 있으며, 그런 헌법을 갖고 있는 한 부정의한 법도 일단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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