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논증의 평가

(2) 논증의 평가



 연역 논증의 목표는 주장의 확실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연역 논증은 전제와 결론 사이에 논리적인 비약이 없다고 주장되는 논증이다. 반면에 귀납 논증의 목표는 전제의 주장을 넘어서서 그것이 가진 지식을 확장하는 데에 있다. 귀납 논증은 아무리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전제와 결론 사이에 논리적인 비약이 있다. 그러나 성공적인 연역 논증의 결론은 전제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연역 논증과 귀납 논증 중 어떤 논증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연역 논증이든 귀납 논증이든 나름의 목표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역보다는 귀납이 “더 설득적이고 더 명료하다.”고 했다. 그래서 “감각에 의해서 더 잘 알게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된다.”고도 했다. “이에 반해서 (연역) 추론은 반대의 논의를 펼치는 사람에 대해서 더 강압적이고 더 효과적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가 연역과 귀납의 낫고 못함을 따질 이유는 없다. 연역과 귀납을 적절하게 균형 있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이유에서 연역 논증과 귀납 논증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비판적 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이 된다.



 우리는 논증을 전제와 결론을 지지관계에 따라 연역 논증과 귀납 논증으로 분류했다. 이제 이런 논증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아보자. 연역 논증이건 귀납 논증이건, 논증을 평가하는 기준은 동일하다. 좋은 논증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첫째, 전제와 결론의 지지관계에 따른 기준이다. 연역 논증은 전제를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결론은 필연적으로 도출된다고 주장된다. 즉 연역 논증에서 결론의 참은 전제에서 필연적으로(혹은 확실하게, 절대적으로) 도출되는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귀납 논증은 연역 논증과 다르다. 귀납 논증은 전제를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결론의 참이 그럴듯하게(또는 개연적으로) 도출된다고 주장될 뿐이다. 각 유형의 논증에서 논증자가 의도한 대로 실제로 지지하지 못한다면, 그 논증은 잘못된 것이다.



 둘째, 제시된(또는 주어진) 전제의 참/거짓에 따른 기준이다. 연역 논증이든 귀납 논증이든 전제가 실제로 참인가를 물을 수 있다.



 따라서 연역 논증의 경우에는 형식적으로 결론이 전제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가뿐 아니라, 그 논증의 전제가 모두 참인지를 평가한다. 귀납 논증의 경우에는 결론이 전제에서 아주 그럴듯하게 도출되면서, 그 논증의 전제가 모두 참인지를 따진다.



 이런 두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해야 좋은 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두 가지 기준 중 한 가지라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논증의 결론이 참이라고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그래서 연역 논증이든 귀납 논증이든 논증은 이 두 가지 기준 중 한 가지만 만족시키는지 아니면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이 두 기준에 따라 논증을 평가할 때, 먼저 첫 번째 기준으로 논증을 검토해서 논증의 타당성과 강도를 따진다. 그 다음 두 번째 기준에 따라 논증의 건전성과 설득력을 따진다.



1) 연역 논증 : 타당성(validity)과 건전성(soundness)



가. 타당한 논증과 부당한 논증



 타당한(valid) 논증은 전제를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 전제가 결론의 참을 확실하게 보증해 주는 연역 논증이다. 즉 연역 논증에서 논증자의 의도대로 전제의 참이 결론의 참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면, 그 논증은 타당한 논증이다. 이때 타당한 논증이라고 해서 실제로 전제가 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제가 실제로 참이거나 거짓이거나 간에 전제를 참이라고 가정할 때, 결론의 참이 필연적으로 보장될 거라 기대되는 논증이 바로 연역 논증이다. 따라서 타당한 연역 논증에서 만약 전제가 참이라면 결론은 무조건 참이어야 한다.



 그런데 연역 논증에서 전제의 참이 결론의 참을 확실하게 보증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연역 논증을 부당한(invalid) 논증이라고 말한다. 연역 논증은 결론의 내용이 전제 속에 이미 모두 들어 있거나 혹은 암암리에 함축되어 있다고 주장되는 논증인데, 실제로 그런 연역 논증은 타당하고, 그렇지 못한 연역 논증은 부당하다. 따라서 ‘타당하다’, ‘부당하다’는 연역 논증에만 적용되는 용어이다.



 다음의 예를 살펴보자.



(a)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b) 모든 말은 귀가 셋이다.


    이 동물은 말이다.


    그러므로 이 동물은 귀가 셋이다.



(c) 어떤 사람은 동물이다.


    어떤 동물은 땅 위에 산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땅 위에 산다.



(a)와 (b)는 만약 전제가 모두 참이라면, 결론의 참이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논증이다. 즉 타당한 연역 논증이다. 그러나 (c)의 경우에는 전제를 모두 참이라고 가정할 때, 그 결론이 필연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이 논증은 연역적으로 부당한 논증이다. 이처럼 전제가 모두 참이라면 결론이 거짓이 되는 일은 논리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쩌면 이 논의가 혼란스러울 수 있다. 논증 (b)에서, 첫 번째 전제를 참이라고 가정하고, 더군다나 그로부터 그 결론을 참이라고 도출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또 (c)는 (b)에 비해 별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부당한 논증이라고 하는 점에서 그렇다. 하긴 언뜻 보아도 (b)의 결론은 참이 아니므로 뭔가 이상해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전제와 결론이 참이어야만 타당한 논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타당성은 전제와 결론의 지지관계가 절대적인가 아닌가를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① 타당한 논증



 다시 말하자면 연역 논증의 타당성은 논증의 구조에 의한 것이다. 즉 타당한 연역 논증은 전제의 참이 결론의 참을 보장하는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타당한 연역 논증의 예를 자세히 살펴보자.



(A) 모든 강아지는 포유류이다.


    모든 포유류는 동물이다.


    따라서 모든 강아지는 동물이다.



(B) 모든 사람은 날개를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C) 만약 코끼리가 포유류라면 그것은 동물이다.


    코끼리는 포유류이다.


    그러므로 코끼리는 동물이다.



(D) 만약 내가 날 수 있다면 나는 조류이다.


    나는 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조류이다.



 위의 논증은 모두 타당하다. (A)와 (C)의 논증에서 그 전제는 실제로 참이고 그 전제로부터 결론의 참이 절대적으로 보장된다. 그러나 (B)와 (D)의 논증 각각에는 두 개의 전제 중 참이 아닌 전제가 하나 있다. 그렇지만 연역 논증에서 그 전제를 참이라고 가정하면, 무조건 결론의 참이 절대적으로 보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B)와 (D)를 타당한 논증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B)에서는 모든 사람이 날개를 가지고 있다면, 나도 날개를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D)에서는 두 전제를 모두 받아들이면서 내가 조류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② 부당한 논증



 그럼 부당한 논증의 경우를 살펴보자. 다음의 두 가지 논증은 부당한 논증의 예이다.



(E) 모든 개는 동물이다.


    모든 포유류는 동물이다.


    따라서 모든 개는 포유류이다.



(F) 만약 비가 온다면 행사가 취소된다.


    행사가 취소되었다.


    따라서 비가 왔나 보다.



 언뜻 보면 위의 두 논증은 아무 문제가 없다. 적어도 논증을 구성하는 명제들 각각만 놓고 본다면, 내용상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증은 명제들 각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제와 결론으로 이루어진 명제들의 관계를 따지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논증을 잘 따져보면, 어렵지 않게 허점을 끄집어낼 수 있다.



 (E)에서 두 개의 전제와 결론은 모두 참이지만, 이 논증은 부당하다. 왜 그럴까를 따져보아야 한다. 결론에서 말하듯이, 개가 포유류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이유가 개와 포유류가 동물이기 때문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E)는 분명히 문제가 있으며, 이런 논증을 부당한 논증이라고 말한다.



 (E)논증의 부당성을 확연히 보이려면 그 논증을 동일한 형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실제로 전제가 참이고 결론이 거짓인 예로 바꾸면 된다. 실제로 전제가 참이고 결론이 거짓인 연역 논증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E)논증은 실제로 전제와 결론이 다 참이기 때문에 마치 결론이 전제로부터 타당하게 도출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E)논증이 가진 형식은 다음과 같다.



(E’) 모든 A는 B이다.


     모든 C는 B이다.


     따라서 모든 A는 C이다.



 이제 위의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전제가 참이고 결론이 거짓인 예를 만들어보자. 그런 예를 쉽고 체계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결론이 거짓이 되도록 A와 C 대신에 다른 단어를 넣어보면 된다. A 대신에 말을, C 대신에 당나귀를 넣으면 결론이 거짓이 된다.



(E₁) 모든 말은 B이다.


      모든 당나귀는 B이다.


      따라서 모든 말은 당나귀이다.



그런 다음 전제 모두가 참이 되도록 B를 적절한 단어로 대치한다.



(E₂) 모든 말은 동물이다.


      모든 당나귀는 동물이다.


      따라서 모든 말은 당나귀이다.



위의 논증이 부당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전제가 실제로 모두 참인데 결론이 거짓이기 때문이다. 



 또한 (F)도 전제와 결론이 모두 참이라 하더라도,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F)논증을 꼼꼼하게 따져보면, 비가 왔다는 결론의 한 가지 근거는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F)의 전제와 결론이 모두 참이라 하더라도, 이 논증의 결론은 전제의 참으로부터 따라 나온 것이 아니다.




 위의 두 논증에서 보듯이, 논증의 타당성은 전제와 결론의 지지 관계로 판단하는 것이다. 또한 논증의 타당성은 전제가 실제로 참인가 거짓인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어떤 연역 논증에서 실제로 전제가 모두 참이고 결론이 거짓이라면, 그것은 부당한 논증이다. 그러나 이처럼 전제와 결론이 실제로 참인지 거짓인지 정확히 안다고 하더라도, 그 논증이 타당한지 어떤지를 언제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논증이 타당하다는 것과 그 논증을 구성하는 명제들이 참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타당한 논증이라면 전제의 참이 결론의 참을 절대적으로 보장한다. 따라서 실제로 전제가 모두 참이고 결론이 거짓인 연역 논증이 모두 부당한 논증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제가 참이면서 그 전제로부터 결론의 참이 절대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보장되는 논증은 무조건 타당한 논증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E)논증의 경우, 전제의 참이 결론의 참을 결코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당하다.




나. 참과 타당성



 명제는 앞에서 보았다시피 어떤 것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문장이다. 그런데 그 주장의 내용은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다. 이처럼 참과 거짓은 명제와 관련하여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명제들로 구성된 논증에서 참과 거짓은 전제와 결론에 적용되는 것이지, 결코 논증 자체에 적용되는 게 아니다. 참인 논증이나 거짓인 논증이란 말은 불합리하다. 또한 연역 논증에서는 논증이 ‘타당하다’, ‘부당하다’, 또는 ‘건전하다’, ‘건전하지 않다’라고 말해야만 한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은 타당성과 참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거나, 거의 비슷한 용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타당성과 참은 분명히 다르다. 이 둘을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타당성은 논증을 특징짓는 용어이고, 참은 명제나 주장, 진술을 특징짓는 용어이다. 따라서 어떤 논증을 보고 참(또는 거짓)이라거나 거짓인(또는 참인) 논증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또한 명제나 주장, 진술에는 타당하다(또는 부당하다)는 말을 사용하지도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논증의 타당성은 논증을 구성하는 명제들이 실제로 참인지 거짓인지와 무관하다. 그런데 오로지 한 가지 경우에만 전제와 결론의 실제 진리값이 논증의 타당성과 관계가 있다. 만약 전제가 참인데 결론이 거짓인 연역 논증이 있다면, 그것은 부당한 논증이다. 왜냐하면 타당한 논증은 전제가 참일 때 결론이 필연적으로 참인 논증이라고 정의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역 논증의 타당성은 전제와 결론 사이의 지지관계, 논증의 구조, 즉 논증 형식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반적으로 연역 논증의 타당성은 전제나 결론의 참/거짓과 연관되어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연역 논증에서 결론이 참이라고 해서, 그 논증이 타당한 것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어떤 연역 논증에서 결론이 거짓이라고 해서, 그 논증이 부당한 것으로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제들 중 일부 혹은 전부가 거짓이고, 결론이 참인 타당한 논증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전제들 중 일부 혹은 전부가 거짓이고, 결론이 거짓인 타당한 논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전제와 결론이 참인 부당한 논증이 있는 반면에, 모든 전제와 결론이 거짓인 부당한 논증도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과 “타당한 논증은 전제가 참일 경우 필연적으로 결론이 참인 논증이다.”라는 정의가 결코 어긋나지는 않는다.



 아래의 논증들은 모두 타당한 논증들이다.



(d) 모든 개는 깃털을 가지고 있다.                  (거짓)


    모든 새는 개다.                                (거짓)


    그러므로 모든 새는 깃털을 가지고 있다.         (참)



(e) 모든 새는 부리를 가지고 있다.                  (참)


    모든 고양이는 새이다.                          (거짓)


    그러므로 모든 고양이는 부리를 가지고 있다.     (거짓)



(f) 모든 식물은 죽는다.                            (참)


    모든 백합은 식물이다.                          (참)


    그러므로 모든 백합은 죽는다.                   (참)



(g) 모든 개구리는 날개가 있다.                     (거짓)


    모든 말은 개구리이다.                          (거짓)


    그러므로 모든 말은 날개가 있다.                (거짓)



 연역 논증의 타당성(또는 부당성)과 전제와 결론의 진리값 간의 관계는 다음의 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제



결론



타당한 논증



부당한 논증



(가)







가능



가능



(나)





거짓



불가능



가능



(다)



거짓





가능



가능



(라)



거짓



거짓



가능



가능






다. 건전한 논증과 건전하지 않은 논증



 이제 타당한 논증을 두 번째 기준, 즉 전제가 실제로 참인가라는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타당한 논증의 전제가 실제로 참인지 살펴보자.



(A) 모든 강아지는 포유류이다.


    모든 포유류는 동물이다.


    따라서 모든 강아지는 동물이다.



(B) 모든 사람은 날개를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C) 만약 코끼리가 포유류라면 그것은 동물이다.


    코끼리는 포유류이다.


    그러므로 코끼리는 동물이다.



(D) 만약 내가 날 수 있다면 나는 조류이다.


    나는 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조류이다.



 (A)와 (C)는 실제로 전제가 모두 참이다. 타당한 논증 형식이면서, 실제로 전제가 모두 참인 논증을 건전한 논증이라고 한다. 이런 논증의 결론은 참이라는 것이 확실하므로, 우리는 그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와 달리 (B)와 (D)는 타당하지만, 전제가 실제로 참이 아닌 것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건전하지 않은 논증이다.



 다시 (a), (b), (c)의 세 논증으로 돌아가자.



(a)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b) 모든 말은 귀가 셋이다.


    이 동물은 말이다.


    그러므로 이 동물은 귀가 셋이다.



(c) 어떤 사람은 동물이다.


    어떤 동물은 땅 위에 산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땅 위에 산다.



 우선 (a)의 두 전제를 검토해 보자. 분명 (a)의 두 전제는 참이다. 그리고 그 결론도 참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즉 (a)의 두 전제는 참이면서, (a)는 타당한 논증이다. 우리는 이런 논증을 건전한(sound) 논증이라고 한다.



 그러나 (b)는 타당한 논증이지만, 첫 번째 전제는 거짓이다. 다시 말해서 거짓인 전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타당한 논증이다. 우리는 (b)와 같은 연역 논증을 건전하지 않은(unsound) 논증이라고 부른다. (c)도 건전하지 않은 논증이다. 왜냐하면 부당한 논증은 모두 건전하지 않은 논증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어떤 연역 논증이 건전한 논증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평가 기준을 다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전제를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결론의 참이 필연적으로 도출되어야 한다. 둘째, 전제가 모두 실제로 참이어야 한다. 이 중 하나의 기준이라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연역 논증은 모두 건전하지 않은 논증이다.



 따라서 타당한 논증 형식을 가진 어떤 논증은 건전한 논증일 수도 있고, 건전하지 않은 논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부당한 논증은 모두 건전하지 않은 논증이다.



2) 귀납 논증 : 강도(strength)와 설득력(cogency)



가. 강한 논증과 약한 논증



 연역 논증과 귀납 논증이 다르듯이, 귀납 논증의 평가 기준은 연역 논증과 다르다. 만약 어떤 귀납 논증에서 논증자가 기대하는 대로 전제가 결론을 그럴듯하게 지지하는 데 성공하면, 그것은 강한 논증이다. 이와 달리 그렇지 못하면, 그 귀납 논증은 약한 논증이다. 귀납 논증은 연역 논증과는 달리 전제와 결론 사이의 그럼직한 지지 관계가 얼마나 강한지를 따진다. 즉 어떤 귀납 논증이 다른 귀납 논증보다 더 강하거나 약하다는 식의 비교가 가능하다. 다음의 두 논증을 보자.



(A)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사람들 중 90%가 독감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는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셨다.


    아마도 할머니는 독감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B) 운동을 하지 않고 식이요법으로만 다이어트를 한 사람의 35%가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나는 식이요법으로만 다이어트를 할 것이다.


    아마도 나는 다이어트에 성공할 것이다.



위의 두 논증에서 (A)는 비교적 강한 논증이다. 그렇지만 (B)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기준, 즉 전제가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결론의 참이 아주 그럴듯하게 도출되는가를 따져 보자.



(a) 이제까지 편두통을 호소하는 내 환자에게 아스피린을 처방했다. 그들 중 80%가 약을 복용한 다음 완쾌되었다. 철수는 나에게 편두통을 호소해 왔다. 나는 그에게 아스피린을 처방했고, 그는 아마도 좋아질 것이다.



(b) 이제까지 내 논리학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 빨간 볼펜으로 필기한 학생들 중 80%가 A를 받았다. 인혜는 이번 학기 내 수업을 듣는데, 나는 빨간 볼펜으로 필기하라고 충고했다. 인혜는 그렇게 했는데, 아마도 A를 받을 것이다.



 우선 (a)는 전제를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결론의 참이 아주 그럴듯하게 보장될 수 있는 귀납 논증이다. 통상적인 경우에 이런 논증은 비교적 강한 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강한 논증이라고 하더라도, 결론이 거짓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아스피린에 알레르기를 반응을 보이는 환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철수의 두통은 단순한 두통이 아니라, 다른 질병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개는 아스피린이 두통을 완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철수가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a)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b)는 어떤가? (b)는 (a)와 거의 형태가 유사하다. 그러나 (b)의 경우 전제가 참이라 하더라도, 통상적으로 그 전제가 결론이 참임을 그럴듯하게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b)는 비교적 약한 논증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통상적으로 빨간 볼펜으로 필기하는 것이 논리학 공부와 어떤 연관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b)의 전제가 참이라 하더라도 그 전제로부터 그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b)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우리가 귀납 논증을 대할 때 그 논증이 강하거나 약하다고 간단하게 결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그 논증에서 명시적으로 제시된 전제로부터 얻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다른 정보가 가정되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논증이 주장되는 맥락에서 암암리에 가정된 전제들이 무엇인지 더 많이 알고 있다면, 귀납 논증의 강도를 평가하는 데 더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다.



나. 설득력 있는 논증과 설득력 없는 논증



 강한 귀납 논증 중에서 전제가 모두 실제로 참인 논증을 설득력 있는(cogent) 논증이라고 한다. 그러나 강한 귀납 논증이라고 하더라도 주어진 전제들 가운데 거짓인 전제가 끼어 있다면, 그것은 설득력 없는(uncogent) 논증이다. 또한 약한 논증은 모두 설득력 없는 논증에 해당한다. 따라서 우리는 귀납 논증에서 설득력 있는 논증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한 논증  ↗설득력 있는 논증(전제가 모두 참임)


귀납 논증 ↗            ↘설득력 없는 논증(거짓인 전제가 있음)       


          ↘ 약한 논증→설득력 없는 논증(결론과 무관한 전제가 많음)  


                            


                강도           설득력



             타당한 논증  ↗건전한 논증


연역 논증↗               ↘건전하지 않은 논증


          ↘ 부당한 논증→건전하지 않은 논증


                               


                 타당성           건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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