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Who am I? 강의안

<자기주도학습-네 번째 시간>                              학번:            이름:

Who am I?

※ 다음 두 가지 글을 읽고 느낀 점을 적으세요.


(1) 최고의 새는 닭이다?

옛날 옛적에 새들이 다니던 학교가 있었답니다. 그곳에서는 ‘완벽한 새 육성’이라는 교훈 아래 날기와 뛰기, 그리고 헤엄치기를 가르쳤지요. 학생인 타조, 오리, 제비, 닭은 저마다 최고의 새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타조는 뛰기에서


단연 돋보였습니다. 시속 60키로미터가 넘게 달릴 수 있었으니, 하늘을 나는 것보다 더 빠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날기와 헤엄치기는 영 젬병이었습니다. 열심히 퍼덕거려 봐야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고, 물이 무서워서 헤엄은 커녕 물가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싫어했으니 수영 실력이 늘 리 없었습니다. 그래도 졸업하려면 낙제는 피해야 했어요. 그래서 날아 보려고 높은 곳에 올라가 열심히 뛰어 내렸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무릎 관절이 상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잘하던 달리기도 못하게 되었지요,

오리는 헤엄만큼은 자신 있었습니다. 그러나 뛰기만 하면 친구들의 폭소가 터져 나오곤 했어요. 커다란 엉덩이를 흔들며 뛰뚱뛰뚱거리는 모습이 여간 웃기지 않았거든요. 열 받은 오리, 이를 악물고 달리기에 매달렷습니다. 갈퀴가 갈라지고 피가 나도록 뛰었습니다. 그렇지만, 달리기 실력은 늘지 않았어요. 오히려 갈퀴만 망가져 버려 잘하던 헤엄마저도 못하게 되었답니다.

제비는 날기에서 늘 일등이었습니다. 하지만, 헤엄치기는 늘 꼴찌였어요. 제비는 날마다 물가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러나 ‘물 찬 제비’일 뿐, 물 속에는 차마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래도 낙제를 면하려면 헤엄쳐야 하는 일, 마침내 제비는이를 악물고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답니다. 그 결과 제비는 깃털이 다 젓고 빠져 버려, 헤엄은 커녕 잘하던 날기도 목하게 되었지요.

닭은 어땠을까요? 처음에 닭은 강력한 꼴찌 후보였답니다. 잘 뛰지도 못하고, 날지도 못하는 데다가 헤엄하고도 거리가 멀었거든요. 하지만 타조가 뛰지 못하게 되고, 오리가 헤엄치지 못하게 되고, 제비가 날지 못하게 되면서 닭은 단연 일등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침내 닭은 타조, 오리, 제비를 제치고 ‘최고의 새’로 뽑혀서 졸업식날 교장선생님인 독수리에게 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상을 주는 독수리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답니다.

<나다운 게 가장 좋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장점보다는 단점에 주목하곤 합니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은 학창 시절에 덜 떨어진 학생으로 취급받앗습니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 어떤 선생님은 “이렇게 우둔한 학생은 처음 본다.”고 넌덜머리를 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뻔한 내용도 이해를 못해서 수십 번식 물어 보는 데다가 흥미 있는 일이 있으면 다른 일은 다 제쳐놓고 그것에만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그렇지만 이런 그의 ‘단점’은 사실 ‘장점’이었습니다. 남들은 당연한 사실로 보아 지나치는 것을 뒤집어 보아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는 능력, 한 주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 때문에, 학교에서는 열등생이었던 그가 인류 최고의 물리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제 나의 단점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설펴봅시다. 내게는 아인슈타인처럼 ‘단점 같은 장점’이 없을까요? 거꾸로,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나의 장점이라고 칭찬했지만 사실은 단점일 뿐인 것은 없나요?


(2) 나는 내 생각대로 만들어진다.

삶이란 자신을 길들여 가는 과정입니다. 원하건 원치 않건,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갑니다. ‘나는 공부를 못해.’, ‘나는 내성적인 편이야.’, ‘나는 못생겼어.’……

이런 편견들은 마치 에어컨의 자동 온도 조절기 같은 역할을 합니다. 실내 온도가 설정된 온도보다 높으면 작동하고 낮아지면 작동을 멈추는 에어컨처럼, 우리는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에 스스로를 맞추어 가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보죠. ‘난 농구를 무척 잘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 봅시다. 어느 날 그는 자기 딴에는 실력이 별 볼 일 없다고 여기는 이들과 농구를 해서 크게 졌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큰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왜 졌는지를 고민하겠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자기가 농구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령 시합에 크게 졌다 해도 별로 상처받지 않습니다. 자기는 ‘본래’농구를 못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이 점은 공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라도 전학을 가면 성적이 낮게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적응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학생은 성적을 회복해서 공부 잘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스스로 ‘공부 잘한다.’고 생각하기에 ‘공부 못한다.’는 주변의 평가를 견디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스스로 공부 못하는 아이라 여기는 학생들은 성적이 안 나와도 ‘으레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물론 기분은 좀 나쁘겠지만요.


히딩크의 비밀-그가 바꾼 것

2002 한일 월드컵의 영웅 히딩크, 그가 바꾼 것은 실력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선수들 스스로 우리 축구의 수준을 ‘파라과이나 이란 정도’라고 믿고 있는 한 실력이 늘 수 없습니다. 세계 중상위권 팀만 이기면 자신도 모르게 ‘할 만큼 했다.’는 기분이 들며 나태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계 최강 프랑스 축구팀은 파라과이 정도의 팀을 이겼다 해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계 최고가 되지 않는 한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고 결국은 자기에 대한 믿음대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히딩크가 한국 대표팀을 처음 맡았을 때, 그는 ‘오대영 감독’으로 통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세계 강팀과 벌인 평가전에서 5:0이란 엄청난 차로 잇달아 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선수들 스스로가 ‘우리는 중위권 수준의 팀’이라고 생각하는 한 결코 그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최강과 당당히 겨룰 수 있는 팀’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 대한민국 대표팀을 무모할 정도로 강팀들과 맞붙게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선수들은 어느덧 경기의 수준을 지단이나 호나우두 같은 최고 선수들의 잣대에 맞추어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높은 수준에 맞추기 위해 더욱더 스스로를 담금질했음은 물론입니다.

나를 바꾸는 출발점에 서자.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자신에 대해 품고 있는 머릿속의 이미지대로 만들어 갑니다. 자신에 대한 편견, 이제 그것을 ‘세트 포인트(Setting Point)’라 하려 합니다. 지금의 내가 마음에 안 들고 바구고 싶다면, 예컨대 공부 잘하고 건강하며 사교적이고 말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등 원하는 모습대로 자신을 만들고 싶다면, 먼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그런 모습의 ‘나’로 ‘세팅’해 놓아야 합니다.


자기주도학습4-who am i.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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