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철학의 이해-철학적인 삶을 위하여

1.철학적인 삶을 위하여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파스칼의 명언이다. 물 한 방울로도 죽을 수 있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그 나약한 인간이 위대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줄 아는 능력에 있다. 즉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 속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찾아 볼 수 있다.

 

인간은 반성하지 않으면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이다. 반성의 능력 또한 인간의 생각할 줄 아는 능력 속에서 가능하다. 반성이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정말로 아름답고 의미 있고 올바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생각하는 일이다.

 

인간의 삶이란 그냥 먹고사는 일 그 이상의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이 틀림없이 있는 법이다. 그냥 하루하루 기분 내키는 대로 살고 충동과 분위기에 따라 살기에는 너무나 우리 삶이 소중하다. 자기 삶이 늘 아름답고 의미 있고 높은 삶의 가치를 지니는가를 생각할 일이다.

 

 * 생각하기 1,2,3은 생각해 보시고, 따로 제출하지 않아도 됩니다.

 

【생각하기 1】 ‘철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두 가지의 동영상을 감상 후 느낀 점을 적으시오.

 

1) 지식채널e 상식과 상상 3부 탈옥 (606번)

 

 2) 지식채널e 180˚ 의 진실 (102번)

 

【생각하기 2】 아래의 글을 읽고 여러분은 고기 잡는 법으로서의 ‘지식’만을 추구하고 있는지, 아니면 ‘간절히 그리워하는 것’이 있는지를 생각해보고 느낀 점을 적으시오.

 

 

 

‘미래의 교육’이란 어떠해야 할까요? 아니, ‘바람직한 교육’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흔히들 하는 이야기로… 아이를 양육할 때 고기를 잘 먹이도록 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빠져있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 . . . . .

 

 

 

그것은 바로…

 

‘아이가 스스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의 ‘스스로’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고기 잡는 법만을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면 고기만 잡게 됩니다.

 

이것은 소품종 대량생산 시대에 적합한 교육입니다.

 

 

 

이제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배를 만들던 잠수함을 건조하든 할 것입니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그는 바다 끝까지 나갈 것입니다.

 

 

 

【생각하기 3】 

※ ‘철학’이란?








  ‘철학’은 ‘진정한 삶’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다. 

‘철학’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어린아이와 같다.

‘철학’은 무엇이다가 아니라 ‘~에 대한 태도’이다. 


 

  나는 철학을 

                                                              】라고 생각한다.

 

 

【생각하기 4】 영화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보고, ‘철학’에 대해 생각하기.

스크린샷 2021-02-24 오전 8.48.30.png

 

<동영상 링크>

<수행평가 링크>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감상 후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입력하세요.

https://forms.gle/gZDuBSkSCYgccJXT9

스크린샷 2021-02-26 오후 2.33.21.png



 ‘철학함’은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아래의 몇 가지 동영상을 통해 ‘질문의 힘’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참고 동영상1. 아빠와 딸


참고 동영상2. 위대한 질문(지식채널e)

참고 동영상3. 인생을 바꿀 수 있는 5가지 질문 방법

참고 동영상4. 행운을 만드는 질문의 힘(세바시 574회)


 읽기자료   소크라테스 변명

플라톤의 ‘개념’, 이것의 이전에는 소크라테스의 공이 먼저 있었습니다. 바로 이 ‘개념’에 해당하는 것을 도출하는 과정이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솔직히 이렇게 딱딱하게 공을 각각 나누어 누군 뭐했고 누군 뭐했다 식의 역할 놀이는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어쨌든 누군가가 그것을 했다는 것이니까요. 뭐 어쨌든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렇다면 그 ‘개념’을 도출하는 과정인 산파술은 대체 무어냐? 산파술의 구조는 딱보면 변론술과 차이가 없어보인다만, 그 결정적 차이점은 이곳 저곳에 흩뿌려져있지요. 그것에 대해 살펴봅시다.

산파술의 경우, 그 목적이 화자가 청자와의 말싸움에서 이기고 그로써 절대진리에 대한 부정을 하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상대자가,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진리에 대한 지식을 좀 더 명확히 정리시켜주는데 그 목적을 둡니다. 소피스트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없다에 근거해 변론술을 펼친 반면, 소크라테스는 “개인별로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르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는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사람들마다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식은 산파술을 통해 끌어낼 수 있다.”고 보았죠. 즉, 소피스트보다 한 단계 진보된 형태가 소크라테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증거로서 소크라테스의 직제자 플라톤의 향연에 보면,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를 포하만 수십명의 제자가 진리에 대해 말싸움이 붙어, 소피스트 모두가  소크라테스에게 박살났다는 기록이 대화편에 남아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이 이어지는 동안, 그 질문에 답변하는 자는, 정리되지 않은 채, 막연히 머리속에만 떠돌던 내용들이 차분히 정리되게 되고, 그로 인해, 진리의 지식에 좀 더 명확히 다가갈 수 있으며, 그래서 산파술은 화자에 의해 일방적인 결론을 도출한채 끝나는 소피스트식의 변론술과는 달리, 어느정도 명확하게 이끌어내진 상대자의 답변으로서 끝을 맺게 됩니다.

바로 이런 것이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의 차이점입니다. 즉 변론술의 주체는 화자이지만, 산파술의 주체는 청자입니다. 이성을 통해, 청자가 진리에 대한 지식을 스스로 깨우치는 것, 그러는 과정에 도와주는 입장인 산파술(산파는 아기를 대신 낳아줄 순 없지요. 다만 도와 줄 뿐이죠. 이렇듯 산파술이란, 진리에 대한 지식의 깨우침은 스스로에 의한 것이며, 소크라테스와 같은 질문자는, 다만 그 스스로의 깨우침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인 대화법입니다.)을 그의 주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이 산파술에 의해 도출된, 대상에 대한 명확하고 공통적인 본질이 바로 ‘개념’이며, 이런 개념의 철학은 2500년 서양철학사를 꿰뚫는 가장 중요한 창이 되어버립니다.

서양철학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논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말장난 같으면서도 유추와 비유 등을 사용하여 다른 이들을 설득해 나가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그 시대에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절실한 덕목일 것입니다. 책은 메레토스, 아니토스, 리콘 세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고발하며 열린 재판에서 소크라테스가 변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차, 2차, 3차에 걸쳐 소크라테스는 청년들과의 문답이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음을 변론하지만 결국 그에게는 사형이 선언되어 감옥이 갇히게 됩니다.

내게 사형을 선고한 아테네 사람들이여, 제우스를 걸고 맹세하건대, 내가 죽자마자, 여러분이 내게 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형벌이 여러분을 덮칠 것임을 나는 분명히 말해두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내게 이렇게 한 것은, 나를 죽이면 여러분의 삶이 비판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그런 것과는 정반대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여러분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그런 사람들을 억제해 왔습니다. 이제 그들은 나이가 젊기 때문에 더 가혹하게 비판할 것이고, 여러분은 더 분노하게 될 것입니다.

2500년 전의 인간사와 현대의 인간사는 어쩜 이렇게도 닮아 있을까? 소크라테스가 예언한 이 저주는 지금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외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을 빼내기 위해 친구 크리톤이 찾아오고 이 둘의 대화가 바로 크리톤편입니다. 크리톤이 자신의 권력을 모두 사용하여 소크라테스를 구출하고자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원칙을 비유법으로 설명하며 친구를 설득하고 크리톤은 슬프지만 받아들입니다. ​파이톤편에서는 아테네 감옥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는 날 새벽부터 소크라테스의 최후까지 지켜 본 파이톤이 에케크라테스에게 그 날의 대화를 전해줍니다. 삶과 죽음, 몸과 영혼. 소크라테스가 죽음 앞에서 그토록 초연할 수 있었던 이유를 소크라테스와 그의 추종자들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로서 죽음이란 삶의 끝이 아닌 다른 시작이었고 오히려 신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축복인 것입니다.

그의 추종자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소크라테스는 그의 논리와 인격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한발한발 논리를 전개 할 때마다 그는 다른 이의 확인과 이의를 묻고, 들으며 자신의 견해를 확장하고 다시 고민합니다. 참된 진리의 여부를 떠나 소크라테스의 문답은 점차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것만 찾으려는 현대사람들에게 한번쯤은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짧게 줄인 말들과 순간적인 자극을 쫒아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밀쳐내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 소크라테스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생각해봅니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낀바가 많았습니다. 산파술이라는 교육방법이 수안머에서 말하고 있는 가장 완벽한 코칭이 아닐까 합니다. 제자 스스로 진리를 찾아 가게 하기 위해 끝임없이 의문을 제시하여 사고의 경지를 최상의 상태를 유지시키려면 스승은 제자의 사고의 흐름을 함께 해가거나 이미 그 과정을 선험했을때 가능하기에 올바른 산파술(코칭)을 실현하기 위한 스승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보여집니다. 

읽고나서  불교 선종에서의 깨달음에 도달하는 방법 중의 하나인 돈오점수[頓悟漸修]가 산파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승이 제시한 답도 없는 화두에 빠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몰입의 경지(깊은 명상)에 들어가고 그 속에서 스스로의 답을 찾아서(돈오를 경험) 다시 스승에게서 깨달음에 대한 검증을 받는 중에 끝임 없는 선문답이 오가고  깨달음에 도달하였다는 인정을 받은 후에는 (사실 깨달음은 누가 검증해 줄 수는 없는 것이기에 깨달았다는 검증이라기 보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가능성 즉 돈오의 경험과 깊은 명상에 도달 할 수 있는 경지를 인정 받는 것입니다.) 다시 스스로의 화두를 정해 끝임 없이 정진해 가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코칭을 통해  학생이 몰입  속에서 문득 스치듯 떠오른 실마리를 통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돈오와 같고, 그러한 경험을 한 학생은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어  코칭의 마지막 목표인 학생 스스로가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갈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주는 것이겠죠. 수학에서 궁극의 깨달음의 경지인 돈오돈수[頓悟頓修](‘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는다’)에 도달 할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 란 화두를 던져 봅니다.


 읽기자료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등장인물

시몬 : 가난한 구두 장인. 주인공이다.

마트료나 : 시몬의 아내

미하일 : 신에게 벌을 받고 쫓겨난 천사. 이 이야기의 핵심 주인공.

부자 : 값비싼 장화를 주문하지만 자신의 앞날을 모르고 사고를 당한다.

쌍둥이 자매 : 이 이야기의 핵심 주제를 알려줌과 동시에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는 여자아이들. 한 여자아이는 다리를 절고 있다. 6년 전 부모를 잃고 이웃 주민들의 도움으로 성장한다.

자매의 양어머니 : 쌍둥이 자매의 양어머니로 자매의 친모의 마을 주민. 고아가 된 쌍둥이 자매를 자신의 아이들로 입양한 뒤 친자식처럼 사랑으로 키워준다.

(2) 줄거리

시몬과 미하일의 만남

친절하고, 가난한 구두장이인 시몬은 어느 농부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시몬은 자신과 아내가 같이 입을 겨울 코트를 만들려고 양가죽을 사러 나갔다. 보통 시몬이 번 돈은 아내와 자식들을 근근히 먹여살리는데 쓰이고 있었다. 가죽을 사려면 그동안 구두를 수선해준 농부에게 외상값을 수금해야 했다. 그는 수금을 하러 가는 길에 아내의 저금통에서 조금의 돈을 빌렸다. 가까스로 수금을 했지만, 5루블은 받지 못하고 겨우 20코페이카만 받을 수 있었다. 홧김에 시몬은 20코페이카으로 보드카를 마시고 얼큰하게 취한 채 집에 가던 길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자신이 20코페이카을 받아서 술을 마신 것에 대해, 그리고 겨울 추위는 양가죽 코트 없어도 참을만한 하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길 모퉁이 교회 앞을 지나다가, 시몬은 교회 앞 담에 기대어 있는 뭔가 희미한 물체를 멈춰서서 보게 된다. 자세히 보니 건강 상태가 나빠 보이는 벌거벗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일부러 그렇게 좋지 못한 의도로 있었다고 그 사람을 의심하고 두려워 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려다가 고개를 들고 시몬을 바라다 보는 그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시몬은 마음 속으로 갈등을 하다가, 외면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그를 도와주기 위해 발길을 돌린다. 

너그러운 시몬은 얼어죽을 것이 분명한 남자를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외투를 입혀서 집으로 데려온다. 같이 나란히 걸었지만, 그 이방인은 좀처럼 왜 그렇게 내팽겨져 있었냐는 시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시몬의 아내 마트료나는 다음 날 아침 식사까지 충분한 빵을 구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는 남겨진 빵으로도 다음 날 아침까지 충분할거라고 생각했다. 시몬이 집 가까이 오자, 그녀는 시몬의 옷을 입고 있는 낯선 사람을 보고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내 마트료나는 즉각 시몬과 낯선 이방인이 술에 취했으며, 새 코트를 만드는데 필요한 양가죽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온갖 욕설을 퍼붓는다. 일단 화가 가라앉자 그녀는 낯선이에게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라고 권한다. 그 사람이 접시에 놓인 빵을 허겁지겁 먹는 것을 보고, 그녀는 그를 동정하게 되었고, 그것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낯선이가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는 바로 짧은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아침 시몬은 이방인에게 말을 걸어 이름을 물었다. 이방인은 그의 이름이 그저 ‘미하일’이라고 답했다. 시몬은 구두를 만드는데 조수로 일해주면 그의 집에 머물 수 있다고 미하일에게 설득했다. 미하일은 이 조건에 동의를 하고서, 오랫동안 매우 믿음직한 조수로 남게 되었다. 

귀족과의 만남

미하일은 구두수선 일을 배웠는데, 놀랍게도 초보자 미하일이 숙련노동자인 시몬보다 일을 더 잘했다. 머리가 영리해서 시범만 보여줘도 곧잘 따라하는 것이었다. 미하일의 소문이 자자하자 시몬은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어느 날 귀족 신사가 가게를 방문했다. 그는 오만한 말투로 1년을 신어도 모양이 뭉개지지 않고, 실밥이 터지지 않는 튼튼한 구두를 만들어 달라는 깐깐한 주문을 한다. 만약 조건에 부합되지 못하면, 시몬을 잡아가겠다고 하였다. 시몬은 비싼 가죽을 보면서 혹시 일이 잘못되면 어쩌나 망설였지만, 미하일은 주문을 받았다. 시몬은 귀족이 주고 간 가죽을 미하일에게 사용하라고 주었다. 미하일은 귀족을 어깨너머로 보며 잠깐 미소를 짓는다. 

미하일은 가죽을 재단하여 두꺼운 가죽 구두 대신, 부드러운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시몬이 이것을 보았을 때는 말리기에 너무 늦어버렸고,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는 지 마하일에게 큰 소리로 따졌다. 미하일이 대답하기도 전에, 신사의 하인이 문 밖에 도착해서 주인 어른이 집에 가던 중 마차에서 죽었다며, 고인의 수의로 신겨줄 슬리퍼로 바꿔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시몬이 깜짝 놀라 미하일을 바라보았고, 미하일은 미리 만들어 둔 슬리퍼를 하인에게 주었다. 

두 아이와의 만남

시간이 계속 흘러갔고, 시몬은 믿음직한 조수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가게를 찾아왔다. 아이들 중 한 명은 절은 발이 장애인이었다. 부인은 아이에게 각각 가죽신을 한벌씩 주문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쌍동이 였다. 한 소녀는 한 발에 장애를 가지고 있으므로 세 개의 신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문한 신발을 만들고 있는 동안 미하일은 그 소녀들을 주의깊게 보았고, 시몬은 그런 미하일의 반응을 의아해 했다. 시몬은 치수를 재며 부인에게 친자녀가 있는지를 물었고, 왜 소녀의 발이 불구가 되었는지를 물었다. 부인은 애들과 아무 관계도 아니며, 죽어 있던 아이의 엄마가 소녀의 발을 우연히 짓눌러 불구가 되었다고 대답해 주었다. 부인은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태어난 지 8주 된 아들이 있었고, 임시로 그 두 아이들을 맡아 길렀다. 이웃집에 살던 이 아이들의 부모는 죽었고, 가난한 어미는 남편이 죽고 쌍동이를 낳았는데, 죽을때 한 아이의 다리위로 쓰러지는 바람에 짓눌려 한 다리를 못쓰게 되었다. 이 부인은 아이들을 다른 집에 입양을 하거나 고아로 둘 수 없어서 자신이 데리고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자기의 아이가 일찍 죽고 말았으며, 방앗간 사업이 잘 되어 부인은 이 아이들을 자기 아이처럼 사랑하며 소중히 지금까지 키워왔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마트료나는 “부모없이는 살아도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감탄한다. 미하일이 이 말을 듣자 이곳에 온 후 세 번째로 미소를 지었다. 

천사 미하일

그 부인과 두 아이들이 가고 나서, 미하일은 시몬에게 다가가 신이 마침내 그를 용서했다며, 작별을 고한다. 그 순간 방 안이 밝아지며 미하일(미카엘의 러시아식 발음)이 천사가 된다. 그 모습을 본 시몬은 두려우면서도 “자네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세 번 웃었는데 왜 웃었는지, 하느님이 왜 자네에게 벌을 주셨는지 말해주게”라고 말한다. 미하일은 6년 전 하느님이 한 영혼을 데려 오라고 명령하셔서 세상에 내려왔다고 했다. 아이들이 죽게 될거라며 아이 엄마가 애원하여 마음이 약해진 미하일은 하나님께 말씀하신 내용을 지킬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하느님은 미하일에게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세가지의 질문의 뜻을 알게 될 것”이라며 답을 찾을 때까지 사람들에게 가 있으라 명령하였다. 그래서 인간계로 내려온 미하일은 알몸으로 차가운 길바닥에서 웅크리고 있던 자신을 시몬과 마트료나가 대접하는 것을 보고,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음’을 깨달았다. 귀족 신사가 1년을 신어도 끄떡없는 구두를 주문했지만 그가 곧 죽을 것을 미하일 자신은 알았기에 구두 대신 슬리퍼를 만들었지만 시몬은 이유를 모르는 것을 보고, 미하일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자신의 육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임을 자각하는 것’임을 알았다. 엄마를 잃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부인을 보고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 말을 마치고 미하일은 하늘로 돌아간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