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딜레마(dilemma)

7. 딜레마(dilemma)



 딜레마에 빠졌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일상적으로 그것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딜레마는 논리적으로 엄격한 형식을 갖는 연역 논증의 일종으로, 두 개의 가언 명제와 하나의 선언 명제를 전제로 해서 결론을 이끌어 내는 논증이다. 선언 명제는 두 가언 명제의 두 전건을 긍정하거나 두 후건을 부정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전자를 구성식(constructive), 후자를 파괴식(destructive)이라고 부른다. 또 결론이 선언 명제이면 복합식, 결론이 정언 명제(‘이다’, ‘아니다’로 끝나는 명제)이면 단순식이다. 따라서 딜레마에는 단순구성식, 단순파괴식, 복합구성식, 복합파괴식의 네 가지가 있다.



 딜레마의 ‘디’(di)는 그리스말로 ‘2’를 나타내고, ‘레마’(lemma)는 ‘가정’을 뜻한다. 딜레마를 기본으로 선언지를 늘임으로써 삼도논법, 사도논법 등의 다도논법을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삼도논법은 세 개의 가언 명제를 한 전제로 하고 선언지가 세 개인 선언 명제를 다른 전제로 해서 성립하는 논증이다.


  


1) 단순구성식 딜레마



두 가언 명제의 두 후건이 서로 동일하고, 선언 명제는 두 가언 명제의 두 전건을 긍정하기 때문에, 정언 명제 형식의 후건이 결론으로 되는 딜레마이다.



p이면 q이고, r이면, q이다.


p이거나 r이다.


그러므로 q이다.



사례) 우리가 진지를 사수하면, 많은 인명을 잃을 것이다. 후퇴를 하면, (기습을 받아) 역시 많은 인명을 잃을 것이다. 우리는 진지를 사수하거나 후퇴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많은 인명을 잃을 것이다.


2) 단순파괴식 딜레마



두 가언 명제의 두 전건이 서로 동일하고, 선언 명제는 두 가언 명제의 두 후건을 부정하기 때문에, 정언 명제 형식으로 된 전건의 부정이 결론으로 되는 딜레마이다.



p이면, q이거나 r이다.


q가 아니거나 r이 아니다.


그러므로 p가 아니다.



사례) 그대가 나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사랑을 고백할 것이다. 또 그대가 나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내게 헌신적일 것이다. 사랑을 고백하지 않거나 헌신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그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3) 복합구성식 딜레마



 두 가언 명제의 전건과 후건이 각각 서로 다르고, 선언 명제는 두 가언 명제의 두 전건을 긍정하기 때문에, 두 후건의 선언이 결론으로 되는 딜레마이다.



p이면, q이고, r이면, s이다.


p이거나 r이다.


따라서 q이거나 s이다.



사례) 내가 그대와 싸우면, 세인의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내가 참으면, 나의 인격이 모욕당한다. 내가 그대와 싸우거나 참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세인의 비난을 받거나, 나의 인격이 모욕당할 것이다.



4) 복합파괴식 딜레마


 두 가언 명제의 전건과 후건이 각각 서로 다르고, 선언 명제는 두 가언 명제의 두 후건을 부정하기 때문에, 두 전건의 부정의 선언이 결론으로 되는 딜레마이다.



p이면, q이고, r이면, s이다.


q가 아니거나 s가 아니다.


그러므로 p가 아니거나 r이 아니다.



사례) 만약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주성(酒聖)이 하늘에 없을 것이다. 만약 땅이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땅에 주천(酒泉)이 없을 것이다. 하늘에 주성이 있거나, 땅에 주천이 있다. 따라서 하늘이 이미 술을 사랑하거나, 땅이 술을 사랑할 것이다.(이백)



5) 딜레마 논파하기



가. 딜레마가 건전하기 위한 규칙









규칙1) 가언 명제의 전건과 후건은 내용상으로 필연적인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규칙2) 선언 명제의 선언지는 모든 경우를 총망라해야 하며 서로 배타적이어야 한다.


규칙3) 선언 명제는 가언 명제의 전건을 긍정하거나, 후건을 부정해야 한다.




특히 규칙 3은 타당한 딜레마의 형식적 요건인 까닭에 이것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아예 부당한 딜레마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일단 형식적으로 올바르게 구성된 딜레마의 건전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규칙1과 규칙2를 잘 지키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딜레마를 논파하는 방법도 그 두 규칙을 이용한다.



나. 딜레마 논파하기



 딜레마를 논파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규칙2를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두 개는 규칙1을 이용하는 것이다. 먼저 선언 명제의 선언지가 모든 경우를 망라하고 있는지를 살펴서,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제 3의 선언지를 드러냄으로써 해당 전제의 신뢰성을 문제 삼는 방법이 있다.



사례) 공격을 하면 적의 막강한 화력에 의해 전멸할 것이다. 후퇴를 하면 적의 막강한 기동력에 의해 퇴로를 차단당해 전멸할 것이다. 공격 아니면 후퇴밖에 없다. 따라서 어쨌든 우리는 전멸할 것이다.



 공격과 후퇴는 가능한 선택지를 총망라한 것이 아니다. 항복을 한다든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둘째 전제가 거짓으로 판명된다. 이런 식으로 딜레마를 논박하는 것을 뿔 사이로 피하기(escaping between the horns)라고 부른다.



 두 가언 명제의 모두 혹은 어느 하나가 거짓이라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딜레마를 논파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을 우리는 뿔 취하기(taking it by the horns)라고 부른다. 이것은 전건과 후건간에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는 규칙1을 이용한 방법이다. 



사례) 만일 지리산 일대에 갈수기용 댐을 건설하지 않으면, 낙동강 물을 2급수로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또 만일 지리산 일대에 갈수기용 댐을 건설하면, 지리산 일대의 환경 파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리산 일대에 갈수기용 댐을 건설하거나 건설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낙동강 물을 2급수로 만들 수 없거나, 지리산 일대의 환경 파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는 첫 번째 가언 명제의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딜레마를 빠져나갈 수 있다. 낙동강 물을 2급수로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딜레마는 그 형식적 특성상 대단히 강력한 설득의 수단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딜레마는 중요한 논쟁술의 하나로 애용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딜레마의 형식을 이용해서 궤변적인 주장을 펼치는 경우도 많았다. 



사례) 네가 만일 정직하다면, 너는 세상 사람들의 미움을 살 것이다. 또 네가 부정직하다면, 신의 미움을 살 것이다. 너는 정직하든지 정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너는 세인의 미움을 사든지 신의 미움을 살 것이다.



 이것은 정치를 하려는 아들을 말리는 고대 그리스의 어떤 어머니가 한 말이다. 이 딜레마는 규칙1을 위배하고 있다. 가언 명제의 전건과 후건의 완전한 연결은 “만일 정직하다면, 세상 사람들의 미움을 사고 신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부정직하다면,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신의 미움을 살 것이다.”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자신에게 유리한 후건만을 말하고 아들에게 유리한 후건은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아들로서는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후건만을 이용해서 어머니의 딜레마를 유아무야로 만들어버리는 딜레마를 다음과 같이 구성할 수 있다.


반박) 내가 만일 정직하다면, 나는 신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또 내가 부정직하다면,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는 정직하든지 정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나는 신의 사랑을 받든지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딜레마를 논박하는 것을 맞딜레마로 되받기(rebutting it by of a counterdilemma)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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