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꿈을 향해 나아가기2-열정과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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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링크>

** 아래 동영상에는 퍼펙트 게임과 슈퍼스타 감사용 두 개 영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행평가 링크>


퍼펙트 게임 수행평가- https://forms.gle/rPHExjcW9spTmmQq6

슈퍼스타 감사용 수행평가 – https://forms.gle/nZ57K3T3ZPcRS4qv7


 읽기자료   몰입의 즐거움-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일반적으로 사고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뜸 지능부터 떠올린다. “내 IQ가 얼마더라?”, “그 애는 수학의 천재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사고력의 개인차에 관심이 깊다. 지능은 이를테면 수를 머리로 얼마나 능숙하게 그려내고 처리할 수 있는가, 단어에 담긴 정보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가처럼 정신 과정의 다양한 측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하워드 가드너가 보여주듯이 우리는 지능의 개념을 확장하여 그 안에 근육 감각, 소리, 느낌, 모습 같은 갖가지 종류의 정보를 구분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얼마든지 포함시킬 수 있다. 어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소리에 대한 감수성이 남달리 뛰어나다. 음정을 잘 구분하며 화음도 또래보다 잘 넣는다. 태어날 때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시각, 운동, 수학 능력에서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

  그러나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집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성숙한 지능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재능의 개발에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정신력을 모을 수 있어야만 음악적 재능을 가진 아이는 음악가가 될 수 있고 수학적 재능을 가진 아이는 공학자나 물리학자가 될 수 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전문가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실력과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모차르트는 신동이었지만 만약 그의 아버지가 아들이 기저귀를 떼자마자 강제로 음악 연습을 시키지 않았더라면 그의 재능이 꽃을 피웠을지 나로서는 의심스럽다. 집중력이야말로 모든 사고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경험의 내용이 서로 다르면 일상 생활에서 조화를 이루기가 어렵다. 내가 근무를 하면서 집중하는 것은 고용주가 나에게 집중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딱히 원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동기 부여는 그다지 높다고 볼 수 없다. 한편으로는 나는 사춘기를 맞이한 아들 녀석의 비뚤어진 행동 때문에 자꾸만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는 있지만 완전히 일에 몰두하지는 못한다. 내 마음이 극심한 혼돈을 겪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의식의 엔트로피가 높아서 그렇다. 감정, 목표, 사고가 초점에 들어왔다 사라지며, 상반된 충동을 낳으면서 나의 관심을 여러 방향으로 흩뜨려놓는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나는 퇴근 후에 친구와 만나 즐겁게 술을 마시면서도 가족에게 곧바로 가지 않은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한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별로 생소하지가 않다. 하루하루의 삶이 그런 모순으로 차 있다. 가슴, 의지, 정신이 일치할 때의 뿌듯함을 우리는 좀처럼 맛보기 어렵다. 감정, 목표, 사고가 일치하지 않고 의식 안에서 격투를 벌이며, 우리는 그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는지 생각해 보자. 가련 스키를 타고 산비탈을 질주할 때 우리는 몸의 움직임, 스키의 위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공기, 눈 덮인 나무에 주의를 집중한다. 갈등이나 모순을 의식할 짬이 없다. 조금이라고 마음을 놓았다간 눈 속에 고꾸라진다. 그러니 누가 딴 생각을 하겠는가? 활강이 너무도 완벽하여 우리는 그것이 한없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순간의 경험에 완전히 몰입한다.

  당신에게 스키가 별볼일 없는 것이라면 그 장면에 당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넣어보라. 그것은 성가대에서 부르는 합창일 수도 있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일일 수도 있고, 춤이나 카드 놀이, 독서일 수도 있다. 혹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처럼 당신도 일을 좋아한다면 까다로운 외과 수술이나 피가 마르는 상담에 몰입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또는 좋아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엄마가 아기와 놀 때처럼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순간에 완전히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순간의 공통점은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이때 각각의 경험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일상 생활에서는 좀처럼 그런 경험을 맛보기가 어렵지만 그 순간에는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이 순간을 나는 ‘몰입 경험’이라고 부르고 싶다. ‘몰입’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것은 운동선수가 말하는 ‘몰아 일체의 상태’, 신비주의자가 말하는 ‘무아경’, 화가와 음악가가 말하는 미적 황홀경에 다름 아니다. 운동선수, 신비주의자, 예술가는 각각 다른 활동을 하면서 몰입 상태에 도달하지만, 그들이 그 순간의 경험을 묘사하는 방식은 놀라우리만큼 우리와 비슷하다.

  우리는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일련의 명확한 목표가 앞에 있을 때 몰입할 가능성이 높다. 체스, 테니스, 포커 같은 게임을 할 때 몰입하기 쉬운 이유는 목표와 규칙이 명확히 설정되어 있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선수는 모든 것이 흑백으로 선명하게 표현된 소우주 안에 있다. 종교 의식에 참여하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거나 산을 오르거나 수술을 할 때도 명확한 목표가 주어진다. 몰입을 유발하는 활동을 ‘몰입 활동’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일상 생활과는 달리 몰입 활동은 명확하고 모순되지 않은 목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준다.

  몰입 활동의 또 하나 특징은 되먹임, 곧 피드백의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는 것이다. 몰입 활동은 작업이 얼마나 순조롭게 이루어지는지를 말해 준다. 우리는 체스를 두면서 말 하나를 움직일 때마다 형세가 유리해졌는지 불리해졌는지를 안다. 등반가는 걸음을 한 보 내디딜 때마다 그만큼 높이 올라섰다는 것을 안다. 성악가는 노래의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자기가 부른 노래가 악보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알 수 있다. 뜨개질하는 사람은 한 땀 한 땀이 자기가 의도하는 무늬와 맞아떨어지는지를 곧바로 알 수 있다. 외과의는 칼이 동맥을 잘 피했는지 아니면 갑자기 출혈이 시작되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우리는 단서가 주어지지 않으면 지금 하는 일이 잘 되는지 못되는지 한참을 모르고 지낼 때가 많지만 몰입 상태에서는 대체로 그걸 알 수 있다.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 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 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행동력과 기회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바람직한 경험을 하게 된다(<그림 1>). 과제가 너무 힘겨우면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에 젖다가 제풀에 포기하고 만다. 과제와 실력의 수준이 둘 다 낮으면 아무리 경험을 해도 미적지근할 뿐이다. 그러나 힘겨운 과제가 수준 높은 실력과 결합하면 일상 생활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심도 있는 참여와 몰입이 이루어진다. 등반가라면 산에 오르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짜내야 할 때, 성악가라면 높고 낮은 성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어야 하는 까다로운 노래를 불러야 할 때, 뜨개질하는 사람이라면 자수의 무늬가 이제까지 시도했던 그 어떤 무늬보다 복잡할 때, 외과의라면 순발력 있는 대응을 요구하는 수술이나 새로운 기법을 도입한 수술을 할 때, 바로 그런 경험을 한다. 보통 사람은 하루가 불안과 권태로 가득하지만 몰입 경험은 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강렬한 삶을 선사한다.

  목표가 명확하고 활동 결과가 바로 나타나며 과제와 실력이 균형을 이루면 사람은 정신을 체계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몰입은 정신력을 모조리 요구하므로 몰입 상태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몰두한다. 잡념이나 불필요한 감정이 끼여들 여지는 티끌만큼도 없다. 자의식은 사라지지만 자신감은 평소보다 커진다. 시간 감각에도 변화가 온다. 한 시간이 일분처럼 금방 흘러간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여한 없이 쓸 때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있건 일 자체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삶은 스스로를 정당화하게 된다. 체력과 정신력이 조화롭게 집중될 때 삶은 마침내 제 스스로 힘을 얻는다.

  삶은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작 눈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암벽을 타는 산악인이 고난도의 동작을 하면서 짬을 내어 행복감에 젖는다면 추락할지도 모른다. 까다로운 수술을 하는 외과의나 고난도의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가는 행복을 느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을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물론 몰입하지 않고도 행복을 맛볼 수는 있다. 고단한 몸을 눕혔을 때의 편안함과 따사로운 햇살은 행복을 불러일으킨다. 모두 소중한 감정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런 유형의 행복감은 형편이 안 좋아지면 눈 녹듯 사라지기에 외부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킨다.

<영화-철학 탐구활동 과제>

☞ 영화 감상 후 QR코드 링크로 영화-철학 심화탐구활동 과제를 제출하세요.

☞ 아래의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으시오.

☞ [질문] ‘몰입’했던 경험을 소개해 주세요. 그리고 앞으로 ‘몰입’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 과제 제출 링크  https://forms.gle/RFengmZHxVJfwvUN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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