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증이란 무엇인가?

(1) 논증이란 무엇인가?



  한 명제의 참이 다른 명제들로부터 지지되는 관계를 가진 명제들의 집합(주장과 그 근거로 된 언명)을 논증이라고 한다. 이때 지지되는 명제를 결론(conclusion), 결론을 지지하는, 즉 그것의 근거를 이루는 명제를 전제(premise)라고 한다. 


  논증은 어떤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미해결의 문제나 논란 중에 있는 주제, 즉 논제들(issues)과 관련하여 많이 사용된다. 논증은 정보의 단순한 전달 이상의 것, 즉 설득, 권유, 아이디어 제시, 이해 증대 등을 제공하는 것, 또 나아가 듣는 사람의 태도나 행동에 영향을 끼치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



(A)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


(B) 정보를 통해 우리의 태도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것


(C) 정보를 통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



  전제와 결론으로 된 명제들의 집합이면 일단 논증이다. 그러나 논증에는 품질이 있다. 좋은 논증과 나쁜 논증이 있으며, 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나아가 좋은 논증을 잘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논리학을 흔히 좋은(올바른) 추론과 나쁜(올바르지 못한) 추론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는 원리와 방법들을 연구하는 학문(I.Copi)으로 정의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좋은 논증은 그 형식이 올바른 논증이다. 그래서 논증의 올바른 형식들에 관한 논의는 중요하다. 그리고 논증의 올바른 형식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논증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잘 알고 있듯이, 논증은 크게 연역논증과 귀납논증으로 나뉜다.


 연역논증은 전제들의 참이 결론의 참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형식을 취하는 논증이다. 따라서 형식이 올바를 경우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필연적으로 참인 논증으로, 타당하거나 부당하다. 반면 귀납논증은 전제들의 참이 결론의 참을 충분히 혹은 적절히, 그렇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는 방식으로 뒷받침하는 형식을 취하는 논증이다. 즉 형식이 올바를지라도 전제가 참이면 결론은 단지 개연적인 논증이 귀납논증이다. 따라서 귀납논증은 타당하거나 부당할 수가 없고, 단지 더 개연적이거나(강하거나) 덜 개연적(약하다)이다.









☞ 정리하기


논증 : 어떤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근거(전제)와 함께 그 명제(결론)를 주장(진술)하는 것이다.





1) 논증의 구성 요소 : 전제와 결론



가. 전제와 결론


  논증을 집에 비유하면, 기둥은 근거이고 지붕은 주장이다. 근거는 어떤 주장이 참이라는 것을 믿게 만드는 토대이다. 이 근거를 논리학에서는 ‘전제(premise)’라고 한다. 그리고 전제에 의해 그 참이 정당화되는 주장을 ‘결론(condusion)’이라고 부른다.



(A) 오후에 비가 올 것이다.


(B) 철학자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다.


(C) 오후에 비가 올 것이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는 길에 라디오를 들었는데 그때 하는 일기예보에서 그렇게 말했다.


(D) 이제까지 나는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여럿 만났는데 그들은 모두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철학자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다.



위의 사례에서 (A)와 (B)에는 주장만 있고 (C)와 (D)에는 주장과 더불어 그 주장에 대한 근거가 제시되어 있다. 논증은 명제들의 집합으로서, 어떤 주장이 참이라는 것을 옹호하기 위해 사용된다.



하나의 단순한 논증에서 결론은 오직 하나이다. 그렇지만 전제는 하나 이상이 있을 수 있다.



(A) 많은 전문가들이 내년에는 경기가 풀린다고 이야기한다.(전제)


    따라서 내년에는 직장이 늘어날 것이다.(결론)


(B) 너는 어제 우리 모임에 오기로 해놓고 빠졌기 때문에(전제) 그 벌로 동아리방 청소를 혼자 해야      해.(결론)


(C) 철수는 형이 둘이다.(전제) 따라서 철수는 독자가 아니다.(결론)


(D)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을 돕는 것은 살인이다.(전제) 살인은 악이다.(전제) 따라서 다른 사람이 죽      는 것을 돕는 것은 악이다.(결론)



논리학에서는 한 개의 전제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직접추리(=대당추리)라고 하고, (D)와 같이 한 개 이상의 전제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간접추리라고 한다.




나. 전제 지시어와 결론 지시어



 논증을 이루는 글은 그것의 구성 요소들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접속 부사들을 사용한다. 어떤 말이나 글에는 대체로 그것이 논증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지시어가 있는 것이다. 이때 어떤 문장이 전제임을 나타내는 지시어를 전제 지시어라 하고, 결론임을 암시하는 지시어를 결론 지시어라고 한다.



(A) 결론 지시어 : 그러므로, 따라서, 그렇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등


(B) 전제 지시어 : 왜냐하면, 그 까닭은, ~라는 이유에서, 그 이유는, …이므로 등




2) 명제와 논증


  논증은 어떤 명제와, 그것이 참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구성된다. 명제는 판단(혹은 믿음)의 결과 혹은 그것의 언어적 표현으로 명사와 명사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명제는 사물이나 일이 이러저러함을 나타내는 언명(言明,statements)으로 참이나 거짓일 수 있다.



삼각형은 세 변을 가지고 있다.


나는 감기에 걸렸다. 


너는 거짓말쟁이이다.


너는 다른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


철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금방 비행기가 지나갔다.


랩이 클래식보다 더 듣기 좋은 음악이다.



 위의 문장들은 모두 명제이다. 명제는 참이거나 거짓인 문장이다. 혹은 그런 문장의 내용을 의미하기도 한다. 명제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사태를 서술한다. 만약 실제로 나타난 사태를 기술한다면 그것은 참인 명제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인 명제이다.


 그렇지만 다음의 문장들은 다르다.



삼각형은 각을 세 개 가지고 있니?


음악 소리를 좀 줄여라.


문 좀 닫아주세요.


안녕, 인혜야.


어머나!



위의 문장들은 어떤 사태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문장들에는 참, 거짓이라는 진리값을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명제가 아니다. 



가. 문장과 명제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장과 명제의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A) 이승엽은 김제동의 친구이다.


(B) 김제동은 이승엽의 친구이다.



이 두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가 다른 서로 상이한 문장이지만,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다. 즉 (A)와 (B)는 각각 상이한 문장이지만, 동일한 의미와 주장을 담고 있는 한 개의 명제를 언표하고 있다. 명제란 문장이 주장하는 내용을 가리킨다. 그리고 문장이 주장하는 내용은 참이거나 거짓이다. 그래서 명제를 참이거나 거짓인 문장이라고도 한다. 차이점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하기 위하여, 또 다른 예를 보자. ‘Tom loves Jerry’와 ‘Jerry is loved by Tom’은 상이한 문장이지만 동일한 명제이다. 또 ‘비가 온다’, ‘It rains’ 등도 상이한 문장이지만 역시 동일한 명제이다. 명제는 단지 객관적인 사태를 표상하는 추상적인 기호 체계로서 구체적인 언어의 종류나 문법적 차이와 무관한 것이다.



나. 문장과 진술



 명제가 주장 혹은 진술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명제의 내용을 주장하거나 진술한다고 말한다. 즉 ‘주장된 명제 = 주장’, 또는 ‘진술된 명제 = 진술’, 이렇게도 사용한다. 


또한 문장과 진술 간에도 서로 다르다. 동일한 서술 문장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주장 내용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의 현 대통령은 전직 CEO이다.



위 문장은 올바른 구조로 이루어진 제대로 된 문장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이 문장을 2006년에 말한다면, 그 말은 거짓이다. 반면에 2012년에 말한다면, 그 말은 참이다. 즉 언제 말하는가에 따라, 다른 진술 내용을 언표하게 된다. 즉 2006년의 진술과 2012년의 진술은 서로 다른 진술이다. 진술은 서술적인 문장이 어떤 구체적인 맥락에서 사용된 것이다. 


 이런 주장이나 진술, 명제들이 연결되어서 의미 있는 대화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의미 있는 대화를 이루기 위해서 주장이나 진술, 명제들을 연결시키는 사고 작용이 ‘추리(reasoning)’이다. 그리고 이런 추리 과정에서 주장이나 진술, 명제들을 연결시킨 논증이 구성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논증은 어떤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제시하는 명제들의 집합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명제들을 모으기만 한다고 해서 논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논증은 어떤 주장과 그 주장을 받쳐주는 근거(들)로 이루어진다. 



3) 논제(issues)



 “논제에 충실하라(stick to the issue).”라는 말이 있다. 광의로 말해서 논제란 무엇이든 논란이 되고 있거나, 의심스러운 것, 혹은 단순히 재음미가 필요한 것을 뜻한다. 만약 갑이 우리나라의 경제위기가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 반면 을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면, 두 사람이 그 논제에 관해서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꼭 양 진영 간에 논쟁이 있어야만 논제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 내에서도 성립할 수 있다. “새 차를 살 것인지 아닌지”는 비록 누구도 왈가왈부하지 않지만 내게는 중요한 논제이다. 따라서 논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 속의 분리된 입장이든 사람과 사람 혹은 집단과 집단 간의 불일치든 논쟁이나 의심의 소지가 있는, 즉 확실성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주장이면 충분하다. 


 논증이란 바로 논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로 제시된 언명이다. “만약 X는 참인가 아닌가?”라는 논제가 있다면, 이 논제에 관한 논증은 X는 참이라는 주장을 지지하도록 고안되거나, 아니면 X는 참이 아니라는 주장을 지지하도록 고안된다. 어떤 논증이라도 그것의 결론의 끝 부분을 ‘~인지 아닌지’로 바꾸면 그 논증이 말하고 있는 논제가 된다.



 예컨대 다음 논증에서 둘째 문장이 논증의 결론이다.



철호씨가 다음 달에 변호사 사무실을 낸다고 한다. 그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소문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 논증이 해결하려고 하는 논제는 “철수씨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이다.



4) 논증과 설명



논증과 혼동하기 쉬운 명제들의 집합이 있는데, 그것은 설명이다. 논증은 어떤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가 문제가 될 때, 왜 그 명제의 참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설명은 이미 참이라고 알고 있는 명제에 대해 그것이 어떻게 해서 참인지 밝혀주는 것이다.



(A) 그가 돈을 훔쳤을 것이다. 그 사람이 고객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이 CCTV에서 확인되었기 때문      이다.


(B) 그는 고객의 돈을 훔쳤다. 며칠째 굶어 무엇이라도 사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A)와 (B)는 모두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제시하는 어구로 연결되어 있다. (A)와 (B)에 나오는 두 문장들 각각을, 우리는 ‘그래서(그러므로)’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연결시킬 수 있다.



(A’) 그 사람이 고객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이 CCTV에서 확인되었다. 그래서 그는 돈을 훔쳤을 것       이다.


(B’) 그는 며칠째 굶어서 무엇이라도 사 먹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고객의 돈을 훔쳤다.



그렇지만 (A)와 (B)는 다르다. (A)와 (A’)는 논증이고, (B)와 (B’)는 설명이다. 전자는 그가 고객의 돈을 훔쳤다는 것이 참이라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달리 후자는 그가 고객의 돈을 훔쳤다는 것을 이미 참으로 인정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논증의 목적은 아직 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주장이 참임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설명의 목적은 이미 당연시되는 현상에 대해 그 이유를 해명하는 것이다. (B’)에서 ‘그래서’다음에 나오는 명제는 논증의 결론이 아니다. 그것은 ‘피설명항(explanandum)’이다.  즉 피설명항은 설명되어야 할 현상(또는 사실)을 서술하는 명제를 말한다. 그리고 설명을 제공하는 명제를 ‘설명항((explanans)’이라고 한다. 따라서 (A)에서 ‘…때문’앞에 나온 명제는 전제가 아니라 설명항이다.



 가. 설명의 종류



① 물리적(인과적) 설명



현상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상호간의 인과 관계를 밝힘으로써 그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물리적 설명이라고 말한다. 물리적 설명은 특히 시간적으로 소급하는 인과 연쇄를 확립한다.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한 해답은 이런 종류의 설명을 형성한다.



물음1. 그 로켓은 왜 발사 직후 폭발했는가?


물음2. 왜 내가 그 컴퓨터에 등록한 직후 그 컴퓨터는 먹통이 되어버렸는가?



답1. 연료 탱크에 난 구멍으로 연료가 새고 있었는데, 거기서 샌 연료에 불이 옮겨 붙어 폭발했다.


답2.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었고, 그 바이러스는 컴퓨터가 켜진 순간 먹통이 되게 프로그       램 되어 있었다.



② 심리적·사회적 설명



 사건을 행위자의 이유나 동기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을 심리적·사회적 설명이라고 한다. 물리적 설명이나 심리적 설명이 개별적 사태를 일반적인 법칙이나 신뢰할만한 일반화 및 선행 조건들로부터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면 과학적 설명이 된다.


물음1. 왜 명희는 간밤에 일찍 가버렸니?


물음2. 왜 노조가 이번에 새 계약을 인정했는가?


물음3. 왜 대통령이 금융 기관 퇴출을 승인했는가?



답1. 명희는 간밤에 철수와 심하게 다투었고,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래서 가버렸다.


답2. 노조원들은 계약 내용 중 일부분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자신들에게 유리하       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답3. 대통령은 금융 기관의 개혁이 경제 회생에 대단히 중요하고 부실 금융 기관의 퇴출은 개혁에 절    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며, 또 지금이 퇴출을 단행하기에 적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③ 기능적 설명



대상이나 사건을 그것이 처한 맥락에 놓고 거기서 어떤 역할을 맡는지를 밝히는 형식의 글이 기능적 설명이다.



물음1. 카뷰레이터는 무엇인가?


물음2. 항체는 무엇인가?


물음3. 왜 스컹크는 그렇게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가?



답1. 카뷰레이터는 연소 엔진을 위해서 연료와 공기를 혼합하는 기계이다.


답2. 항체는 이물질을 공격하여 감염을 예방한다.


답3. 스컹크는 약탈자들을 쫓아버리기 위해서 고약한 냄새를 이용한다.



나. 설명과 논증 구분하기



 논증과 설명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또 설명을 논증의 형식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간단한 구분 요령은 다음과 같다.



① 설명은 주로 사실 관계를 말하는데 비해, 논증은 예측이나, 불가피함 등과 같이 당위적인 표현, 즉 그럴 수밖에 없다든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든지 하는 따위의 표현을 담고 있다.


② 설명은 핵심 주장 부분 앞에 “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했다)”와 같은 표현을 붙이면 뜻이 잘 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논증은 “이것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주장될 수 있다”와 같은 표현을 붙이면 뜻이 잘 통한다.


③ 논증의 경우 전제들 속에 주장되는 바(결론)가 실질적으로든, 함축적으로든 이미 포함되어 있다. 


④ 논증은 언명과 언명간의 관계를 다루는 작업이고, 설명은 사건과 사건의 관계를 다루는 작업이다.



아래 예를 이용해서 설명과 논증의 차이를 분명히 해 보자.



(A)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이면, 물 분자들에 열이 전달되어 각 물 분자들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이면, 물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B)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이면서 그 냄비에 온도계를 넣어 측정한 결과, 점점 온도계의 눈금이 올라갔다. 그런데 온도계는 온도가 올라갈수록 눈금이 올라간다. 따라서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이면, 물의 온도가 올라간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네 가지 식별 요령을 적용해 보면, (A)가 설명이고 (B)가 논증임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논증의 형식을 취하면서 동시에 설명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해당 글에 대한 화자의 의도에 따라 논증인지 설명인지를 구분할 수도 있다. 즉 단지 어떤 사태가 ‘왜’ 혹은‘어떻게’발생했는지를 밝히려는 의도에 입각한 글은 설명에 가깝고, 그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려는 의도에 입각한 글은 논증에 가깝다.



 다시 말해 어떤 주장들의 집합이 논증이 되느냐 설명이 되느냐는 전적으로 화자 혹은 글쓴이의 의도에 달린 것이다. 또한 그 의도는 글의 맥락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A) 로마제국은 망했다. 제국 말기에 부정부패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B) 로마제국 말기에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다. 그러니 안 망하고 배겨?



(A)는 단지 로마제국이 부정부패로 인해서 망했다는 점을 밝히려는 의도를 갖기 때문에 설명이고, (B)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는 결국 망하게 마련이다.”는 일반적인 배경지식에서 볼 때 부정부패가 만연한 로마제국의 패망은 당연하다는 점을 주장하려는 의도를 갖기 때문에, 논증이라고 볼 수 있다. (B)를 숨겨진 전제를 드러내어 분명한 논증의 형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전제1) :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는 결국 망하게 마련이다.


전제2) : 로마제국은 말기에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결론 : 따라서 로마제국은 당연히 망했다.



“왜 명희는 간밤에 일찍 가버렸나?”는 물음에 대해서 앞에서처럼 “명희는 간밤에 철수와 심하게 다투었고,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래서 가버렸다.”라고 대답하면 설명이 되지만, “명희는 간밤에 철수와 심하게 다투었고,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러니 갈 수밖에.”로 답한다면, 이것은 논증에 가깝다. ‘왜’갔는지가 문제가 아니고, 갈 수밖에 없었음을 주장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5) 논증과 조건문



 앞서 우리는 논증과 설명을 혼동하기 쉽다고 말했다. 이런 혼동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는 이것 말고도 더 있다. 우선 다음에서 논증이 어떤 것인지 찾아보자.



(A) 만약 비가 온다면, 기압이 낮을 것이다.


(B) 비가 오고 있다. 따라서 기압이 낮을 것이다.



위 문장 중 (A)는 조건문이다. 조건문은 “만약 …라면, …이다.”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문장으로서,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복합적 명제이다. 조건문에서 ‘만약 …이라면’에 들어가는 명제를 ‘전건’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오는 명제를 ‘후건’이라고 한다. 조건문은 말 그대로 어떤 조건에서는 어떤 것이 뒤따른다는 것을 서술하는 것이다. 전건이 무엇이든 그것이 성립할 때 후건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B)는 (A)와 다르다. (B)는 논증이다. 비가 오고 있기 때문에, 기압이 낮다는 사실을 이끌어내고 있다. 간혹 (A)와 (B)를 비교해서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조건문을 논증과 혼동하기도 하는데, 거기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 둘 다 추론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론은 어떤 생각을 근거로 삼아 다른 생각을 도출하는 것이다.



 (A)와 (B)는 둘 다 비가 온다는 생각에서 기압이 낮을 것이라는 생각이 도출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조건문은 전건과 후건의 밀접한 관계를 표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건이나 후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논증은 이와 분명히 다르다. 즉 논증에서 논증자는 전제가 참이며, 따라서 그것을 근거로 하여 결론이 참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건문 자체는 논증이 아니다. 그렇지만 조건문이 논증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즉 조건문은 논증의 전제나 결론으로 사용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경우가 조건문을 포함한 논증이다.



만약 네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알아보아야 한다.


만약 다른 사람을 알아보아야 한다면 일이 번거로워진다.


따라서 만약 네가 오지 않는다면 일이 번거로워진다.



 위에서 전제와 결론 모두 조건문이다. 그러나 이 조건문들 각각은 논증이 아니다. 그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논증을 구성할 뿐이다.



6) 논증이 아닌 글들



 주장이나 진술, 문장은 논증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다른 형태의 글에서도 사용된다. 논증이 아닌 글들과 논증을 분명하게 구별하기 위하여, 논증이 아닌 글의 전형들을 살펴보자. 



가. 믿음(의견)



논증이 아닌 글 중 자신의 믿음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믿음(belief)이나 의견(opinion)에 관한 진술이 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타인을 위한 배려가 곧 자기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글을 글쓴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 글은 논증이라고 할 수 없다. 단지 자신의 믿음이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나. 기술(description)



어떤 장면을 묘사하는 것처럼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잘 보여주는 경우이다.



형사들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방 안은 몹시 어질러져 있었다. 빈 소주병들이 여기저기 있었고, 사람들의 옷가지가 널려 있었다. 또 TV가 켜져 있었으며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 글은 현장 상황을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이 글을 읽는 이의 머릿속에 현장의 그림이 그려질 수 있을 만큼 확연한 진술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은 현장에 대한 성공적인 기술인 셈이다. 그렇지만 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 글은 논증이 아니다.



다. 보고(report)



어떤 글은 어떤 상황에 대한 기술인 동시에 보고인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기술과 비슷하지만 단순히 어떤 내용을 보고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논증이 아닌 글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에 속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논증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암 치료에 대한 다음과 같은 보고를 보자.



 암은 하나의 질병이 아니라 여러 질병을 일컫는다. 그중 어떤 형태는 특히 방사선 치료로 회복될 수 있다. 방사선을 암세포 조직에만 투사하려고 주의 깊게 시도한다. 만약 암세포가 방사선의 파괴적인 효력으로 죽고 다른 세포들이 상하지 않으면 치료는 성공적이다.



암 치료에 관한 위의 보고는 앞서 말한 기술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진술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 증명하기 위한 주장이 없기 때문에 논증이라고 할 수 없다.



라. 해설(expository statements)



상술적 혹은 해설적 진술에서 글쓴이는 화제가 되는 문장으로 시작한 다음, 그것을 계속 전개해 나간다. 이런 종류의 글을 쓰는 사람들의 목적은 화제가 되는 문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화제가 되는 문장을 계속 확장해 자세하게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독서의 속도는 독자에 따라 전적으로 다르다. 어떤 독자는 필요에 따라 아주 천천히 읽기도 하고 아주 빨리 읽기도 한다. 만약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면, 자신이 읽은 곳에서 멈추고 그 부분을 다시 읽을 수도 있고, 그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볼 수도 있으며, 메모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그 내용이 친숙하거나 쉬운 것이라면 아주 빨리 읽을 수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첫 번째 진술이 참임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은 이런저런 경우를 들면서 첫 번째 진술에 살을 붙이고 있다. 물론 어떻게 보면 이런 글은 논증과 유사한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상황의 전개에 따라서 논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어떤 주장을 다른 주장으로 증명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있을 경우에 한해서 그렇다.


마. 예시(illustration)



하나의 진술이 그 진술의 예를 나열하는 언급과 연결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언급들의 모임을 예시라고 한다.



 사람들이 흥미롭게 생각할 수 있는 컴퓨터의 특징들 중 하나는 지루하게 반복적인 일을 그것이 신속하게 끝내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면서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려고 할 때, 편집 기능은 단번에 이 일을 해치운다.



그런데 예시도 상술적인 진술처럼 맥락에 따라 논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만약 어떤 주장을 다른 주장으로 증명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경우에 그렇다.



바. 설명(explanation)



논증이 아닌 것 가운데 논증과 쉽게 혼동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설명이다. 설명은 두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 하나는 ‘피설명항’이고, 다른 하나는 ‘설명항’이다. 피설명항은 설명되어야 할 사건 혹은 현상을 기술하는 진술이다. 그리고 설명항은 설명하려고 하는 진술 혹은 진술들이다. 그렇지만 설명은 ‘왜냐하면’, ‘… 때문에’ 같은 전제 지시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논증과 혼동되기 쉽다.



나는 어제 영화관에 갔는데, 그 친구는 거기에 함께 가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는 집에서 할 일이 있었거든.



이 예는 친구가 영화관에 가지 않은 사실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 ‘왜냐하면’이란 전제 지시어가 있다고 해서 이 예를 논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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