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줄무늬 애벌레 한 마리가 알을 깨고 태어난다. 배가 고파 나뭇잎을 갉아먹고 또 다른 나뭇잎을 갉아먹고, 졸음이 오면 잠을 잔다. 그러다가 애벌레는 생각에 빠진다.

 

“사는 데는 그냥 먹고 자라는 것 말고도 그 이상의 무엇이 틀림없이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줄무늬의 삶에 변화를 예고하는 생각이었다. 애벌레는 자기에게 시원한 그늘과 양식을 제공해 주던 고마운 나무에서 기어 내려왔다. 애벌레는 먹고 자는 것 이상의 보람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줄무늬애벌레는 무수히 많은 애벌레들이 만드는 기둥을 발견한다. 모두들 정상에 오르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도 이 애벌레들의 기둥에 기어오른다.

 

“처음 뛰어들은 얼마 동안은 충격적이었다. 줄무늬 애벌레는 사방으로부터 밀리고 채이고 밟히곤 했다. 밟고 올라서느냐 아니면 밟혀 떨어지느냐였다.……줄무늬 애벌레는 밟고 올라섰다. 그 집단 속에서는 이미 동료란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다만 위협이며 장애물일 뿐, 그들을 발판으로 하여 올라서야 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었다.”

 

치열한 싸움터와 같은 기둥 속에서 줄무늬애벌레는 노랑 애벌레를 만난다. 둘은 따스한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 기둥에서 빠져나온다. 이어지는 것은 줄무늬애벌레와 노랑 애벌레의 봄날 같은 사랑이다. 함께 풀을 먹고 서로 사랑하며 산다. 상대방의 털 하나까지 알 정도로 둘은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그런 사랑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게 삶이었다. 줄무늬애벌레는 다시 기둥을 향해 떠나고…….

 

두 마리 애벌레는 서로 다른 과정을 거쳐 나비가 된다. 줄무늬는 끝없는 인생의 싸움터에서 허무를 느낀 뒤에. 또 기어오르고, 싸우고, 밀치지도 않았는데 자유롭게 높이 날아다니는 노랑나비를 존재를 깨달은 뒤. 노랑 애벌레는 기다림의 용기 속에서. 그러나 둘 다  삶 속에는 자기들이 아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나비가 될 수 있었다.

나비가 존재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까지 애벌레의 삶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깨달음 뒤에 나비가 되기 위한 과정도 고독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줄무늬 애벌레는 어떻게 하여 나비가 되는 것일까?

 

“마침내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줄무늬애벌레는 그곳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갔고 그는 무서워졌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노랑나비는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 들판에는 꽃들이 피어있고 그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수많은 나비 떼들이 하늘을 날고 꽃과 어우러지고 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깊은 생각에 잠겨야할 것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된다는 것에 대해, 애벌레의 기둥에 대해, 변화를 위한 시련에 대해,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에 대해……. 그 모든 생각은 고스란히 나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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