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사회-월든 투

과학적인 이상사회에 관한 소설로써 행동주의자인 심리학 교수, 관념론적 자유주의자인 철학 교수, 그리고 현실적 상황의 극복과 새 사회건설에 적극적인 행동파들인 네 명의 젊은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 전개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오늘을 사는 현대인 모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월든 투>에서 그려지는 심리학적 이상사회는 약 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자족적인 공동체이다. 이들의 행동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통제된다. 
이 책은 사회과학도를 위한 교과서이자 참고서이며 하나의 바람직한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권장할 만한 교양서이다.

 

월든 투, 스키너

 

 

 

월든 투의 작동원리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가 공상소설, 월든 투(Walden Two)를 집필 했을 때는 1948년이었다. 월든 투는 명칭부터가 흔하지 않다. 미국의 이상주의자이며 자연주의자였던 소로나 그와 오랜 친교를 나누던 시인 에머슨이 즐기던 월든 호수를 본 딴, 그런 이상향적인 명칭이다. 월든 그 자체가 아니고, 시인이나 철학자의 이상향이 아닌, 심리학자의 과학적인 공동체를 의미하기 위해 “월든 투”로 작품명을 잡았다. 스키너가 그렸던 ‘월든 투’는 원래 일천여 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 공동체였다.
스키너는 인간에 대한 조작이 가능한 이상사회를 ‘월든 투’에서 잘 그려내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는, 서로가 갈등하지 않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행복한 사회’는 불필요한 일을 줄이는 사회이다. 가사에서 시작해서 정신적 중노동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원하지도 않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최대한으로 줄여주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이다. 지금처럼 8시간의 노동에서 벗어나 네 시간 정도만 일해도 충분히 의식주가 해결되고 욕구가 충족되는 사회가 바로 월든 투가 그리는 행복한 사회였다.
월든 투는 ‘보람 있는 사회’를 꿈꾸는 현실사회이다. 보람 있는 사회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회’이다. 누구도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강요받지 않으며 그 누구라도 자기적성에 맞는 일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보람 있는 사회’란 사람들에게 휴식과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사회이다. 
‘월든 투’에서는 구성원들에게 예술, 체육 등 다양한 여가 활동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점점 행복 그 이상의 것은 생각하지도 원하지도 않게 된다.

인간의 자유의지

스키너는 인간의 ‘자유의지’나 인간의 자유,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따라 행동하는 비의지적인 동물일 뿐이다. 인간이란 다른 동물과 다를 것이 거의 없다. 이런 인간이라는 동물을 움직이려면 ‘행동 공학’만이 필요하다. 짐승에게는 먹이가 필요하지만 인간에겐 행동공학이 필요하다. 행동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가 조작이다. 조작은 조건형성을 위한 것이다. 인간은 그들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조작과 그것이 가능한 조건이 형성되면 움직인다. 기계처럼 움직인다. 자유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조작되었기에 움직인다. 설령 인간의 자유의지문제를 논한다고 해도 그것은 행동공학이론에서는 이론적으로 무의미할 뿐이다. 행동공학의 이론 구성상 인간의 자유의지는 이미 짜여 있는 구성요소일 뿐이다. 
행동 공학은 인간에게 ‘바람직한 결과물’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이 그 결과물을 얻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도록 유도하는 ‘강화’의 원리이다. 행동공학의 원리에 따라 요구되는 개인이 조작을 선택하느냐 안 하느냐는 전적으로 행위자의 ‘자유의지’의 문제이다. 선택을 해도 그것은 자유의지의 결과이고 하지 않아도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행동공학의 이론대로 그 안에 짜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동 공학은 원리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예 인간의 자유의지를 논하는 그 자체가 행동공학의 원리를 모르는 소리라고 넌지시 일깨워 주고 있다. 

스키너의 교육원리

스키너는 우리들에게 한 가지 점에서만큼은 끊임없이 세뇌시키고 있다. 사람들에게 행복의 조건만 만들어 준다면 그들은 행복해진다. 행복하게 느끼도록 그들의 행동을 조작하기만 하면 그들은 서로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갖는다. 그것이 교육에 적용되면 ‘행동 공학’의 ‘공동 부양’이 된다. 공동 양육과 공동 교육이 바로 행복을 보장하는 교육행동공학의 원리이다. 월든 투의 아이들은 출생하면 곧 집단적으로 양육되기 시작한다. 공동 부양이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아이든 자신의 정서, 재능에 맞지 않는 부모에 의해 양육되면 그것은 불행의 시작이다. 잘못된 부모의 영향력으로 생긴 아이들의 부정적 성행을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술과 가치를 일방적으로 주입할 필요도 없다. 정규 교육과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필요 역시 없다. 아이들은 누구의 강제도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든 투에서는 자기 스스로 배우고 선택할 수 있는 교육이 실행되기 때문이다. ‘행동 공학’의 공동 부양이 그 일을 맡게 되는데, 아이들은 공동양육으로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모두가 자기 몫을 행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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